대한결핵협회는 창립 70주년을 맞이하여 결핵퇴치 및 호흡기 감염병 극복을 위해 걸어온 협회의 발자취를
사업별로 소개하는 “Oh! 70주년!” 코너를 신설했다. 앞선 호에서는 검진, 검사, 의료, 모금, 지원 등에서
국민의 건강복지 증진을 위해 힘 써온 대한결핵협회의 활약을 사업별 역사를 통해 소개했다. 그리고 이번
호에서는 사업을 수행하며 협회의 70년 역사를 손수 일궈낸 우리 임직원을 소개하고자 한다.


1953년에 당시 보건사회부가 승인한 제1호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대한결핵협회는
‘결핵퇴치’라는 목표를 가지고 70년을 달려왔다. 결핵퇴치사업은 협회의 가장 큰
원동력이자 130만 명(1950년대)에 달하던 국내 결핵환자를 오늘날 2만 명까지
감소시킨 주역이다. 이러한 사업들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해준 임직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부, 결핵연구원,
글로벌 협력원과 12개 시·도 지부로부터 5백여 명의 우리 임직원을 대표해 줄 인물을
추천받아 총 16인을 선정했다. 이들을 통해 결핵과 함께한 70년,
그리고 앞으로 결핵을 넘어설 70년을 들여다보자.

김은정_본부 홍보기획팀



결핵과 함께한 70년, 그리고 지금

협회는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65세 이상 노인 결핵검진’의 성과를 토대로 2020년부터 질병관리청과 함께하며 전국 단위로 사업을 확대해 수행하고 있다. 또한 2017년 잠복결핵감염 검사를 시작했고, 2020년부터 코로나19 등 호흡기 감염병으로 영역을 넓히며 검사 및 연구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협회의 모든 임직원이 피부로 느낀 큰 위기였다. 검진, 검사뿐만 아니라 국제, 모금, 홍보 등 모든 사업이 위기였다. 하지만 협회는 검사사업을 통해 구축해온 인력과 인프라를 코로나19 PCR 신속진단 검사사업에 투입함으로써 국가적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데 이바지하였고, 협회가 맞은 위기 역시 기회로 역전시킬 수 있었다. 협회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인해 중단되었던 사업들을 다시 이어가며 ‘제2의 도약’을 맞이했다. 이처럼 최근 10년 동안 사업별로 발생한 크고 작은 변화들은 서로 시너지를 내며 협회를 성장시켜왔다.



오환욱 팀장은 23년 전 입사 당시를 떠올리며 오늘날 검진사업 인프라가 많이 발전했다고 회상했다. 불과 20년 전에는 지금처럼 X-선 촬영 결과를 바로 판독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2000년대 초반)에는 검진차에 커다란 크기의 간접촬영 X-선 장비를 싣고 다녔었고, 또 필름을 사용 했어요. 롤 필름을 사용했는데, 롤 한 개당 150명 정도 촬영할 수 있었어요. 검진대상자가 많을 때는 현장에서 롤 필름을 갈아끼우기도 했죠. 그땐 검진차에 암실도 있었어요. 그런데 검진차로 시골길을 달리는 경우가 많다보니 3~4년차쯤이었나, 어느 섬에서 주민 대상으로 결핵검진을 했었는데 이동하는 중간에 빛이 들어가서 영상을 못 쓰게 된 적이 있었어요. 결국 그 섬에 다시 들어가서 검진해야 했죠.”


그때는 촬영한 필름을 본부 중앙현상소에서 현상하여 지부별 위탁 판독의를 거치다보니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협회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006년 디지털 X-선 발생장치를 도입했으며 2011년부터 ‘ONE-STOP 결핵검진’을 시행했다. ‘ONE-STOP 결핵검진’은 전국을 3개 권역(수도권-충청호남권-영남권)으로 나누어 권역별 1개 이동검진팀을 배치해 취약계층을 찾아가는 검진사업으로, X-선 촬영과 영상 판독, 결핵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결핵균 검사까지 현장에서 원스탑으로 진행했었다. 그 당시 검진차량에는 거동 불편자의 검진을 위해 리프트 시설도 장착됐었다.


“지금은 현장에서 X-선 촬영을 하면 중앙영상판독센터에서 원격판독을 진행하지만, 그때는 판독 의사가 동행했어요. 그리고 임상병리사도 (팀에) 구성되어 현장에서 유소견자의 객담을 채취하고 도말검사도 진행했었죠.”


박정환 과장은 그때도 대형병원에서 사용하는 X-선 장비를 버스에 싣고 다녔다며, 100~200kg 장비를 실은 덩치 큰 검진차량으로 전국을 달리다보니 크고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다.


“좁은 논두렁길을 달리다가 차가 논에 빠지거나, 길가의 과일나무 가지가 꺾기는 바람에 주민에게 혼나기도 했답니다.”


이동검진팀이 매년 365일 전국을 누비며 구불구불 시골길까지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검진차량을 운행하는 직원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오대철 대리는 이 일을 ‘검진의 시작과 끝’이라고 표현했다.


“이동검진팀은 주로 노인·장애인·노숙인 보호시설, 쪽방촌 등을 찾아가요. 그렇다보니 와상환자처럼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을 검진할 때가 잦은 편이라서 이분들도 검진을 받을 수 있게 이동을 거들다 보면 겨울에도 땀이 납니다. 검진을 마치고 현장을 정리할 때 시설장님이 오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주시면 정말 뿌듯해요.”


협회는 2011~2014년까지 ONE-STOP 결핵검진을 통해 165,667명을 검진했으며, 264명의 활동성 결핵환자를 발견했고(발견율 0.16%), 이후 ‘중증시설 결핵환자 발견’사업과 ‘찾아가는 결핵검진’사업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그리고 이동검진사업은 이동식 소형 X-선 장비를 도입하면서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았다. 김영호 대리는 소형 검진차량을 사용하게 되면서 소수 인원으로 더 많은 팀을 구성했고, 전국 구석구석을 찾아갈 수 있는 기동력을 얻었다고 했다.


“도서지역을 찾아가기 수월해졌고, 무엇보다 와상환자처럼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침대에 누운 채로 흉부 촬영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그분들이 다칠 위험 없이 검진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방사선사들이 검진 현장에서 이동식 소형 X-선 기기를 사용하면서 느낀 문제점은 더 나은 장비를 개발할 수 있게 개발사에 피드백을 주고 있어요.”


  • 2017년 광주·전남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노인 결핵검진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며, 2018~2019년에는 강원·충남·전남지역에서 시범사업으로 진행되다가 2020년부터 질병관리청과 함께하며 전국으로 확대 시행되었다. 같은 해, 노숙인 결핵검진사업도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각 사업은 시범사업부터 2022년까지 568,393명의 노인을 검진하여 484명의 결핵환자를 발견했고, 64,409명의 노숙인을 검진하여 결핵환자 98명을 발견했다. (자세한 내용은 2022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검진사업이 중단된 적이 있었으나, 협회가 시작한 코로나19 신속진단 검사사업과 협업함으로써 이내 재개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지자체가 직접 노숙인을 관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죠. 그래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찾아가는 결핵검진’과 함께 수행하겠다는 협회의 아이디어가 한수였다고 생각해요.”


현재 노숙인과 쪽방 거주자 결핵검진을 담당하는 최보경 주임은 2020년의 여름은 정말 숨막히는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무더운 여름날, 코로나19 방호복과 K94 마스크를 착용하고 그 위에 차폐복과 페이스 쉴드를 입어요. 그리고 손에는 라텍스 장갑을 낀 채 장비를 들고 촘촘한 쪽방촌 내부로 들어가면 정말 숨이 턱턱 막혀요. 그래도 제게 주어진 일이니까 최선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한번은 좁디좁은 쪽방에서 웅크린 어르신을 만났어요. 떡이 진 머리에 수염이 덥수룩했던 그분은 동행했던 간호사와 봤을 때 결핵에 걸리셨다는 확신이 들었으나 한사코 검진을 거부하셔서 한참을 설득했어요. 마침내 흉부 X-선 촬영을 하려고 보니 무릎이 굽어 걷기는커녕 다리를 펴지도 못하시더라구요. 검진결과는 활동성 결핵이었고, 치료와 재활을 위해 관련 기관에 연계해드렸어요. 그리고 몇 년 뒤 그곳에 다시 검진을 나갔을 때, 저만치에서 말끔한 외형으로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신 분이 있었는데 그때 그분이더라구요. 그분을 알아본 순간에는 가슴이 정말 뭉클했어요.”


한번은 노인 결핵검진 중에 X-선 영상을 판독하면서 검진자의 암을 발견한 사례도 있었다.


“80대 어르신이었는데 4기라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자녀분이 ‘전년도 건강검진에서도 별 이상이 없었는데, 이렇게 발견하게 돼서 감사하다’라며 좋은 일을 한다고 말씀해주시는데 저도 울컥했어요.”




보건소 및 전국 병의원에서 의뢰해온 검체에 대한 결핵균 검사는 1962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협회와 질병관리청이 함께한 찾아가는 노인 결핵검진사업의 유소견자에 대한 결핵균 검사는 2018년(당시 시범 운영)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7년 시작된 잠복결핵감염 검사는 현재 병의원, 돌봄시설 등의 집단시설 종사자 대상으로 확대해 진행하고 있다. 이승철 주임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2017년 고등학교에 1학년 잠복결핵감염 검사를 하러 갔을 때는 저도 신입이라 열심히 하겠다는 열정이 아주 컸어요.”


하지만 코로나19가 발병하면서 2020년 세계적인 팬데믹이 초래됐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보건소와 전국 병의원의 인력이 코로나19 방역에 투입되면서 검사사업 역시 축소됐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신속진단 검사사업이 시작되면서 협회의 사업들이 재개되었다. 검사업무를 하는 임상병리사들이 특히 바빠졌다.


“그때 (인터뷰에 참여한 직원을 포함해) 많은 임상병리사가 선별진료소와 검사실에 투입됐어요.”


결핵연구원과 본부 임상검사센터에서 코로나19 신속진단 검사사업이 시작됐다. 만 2년 동안 검사실은 24시간 3교대 근무 체재로 돌입했다. 당시 신준수 과장은 결핵연구원에서 야간 근무조를 총괄했다.


“초기에는 코로나19의 감염원이 정확히 밝혀지기 전이라, 검사요원이 감염원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BL3 (생물안전3등급) 연구시설에서 진행했어요. 한번 방호복을 입고 BL3에 들어가면 교대시간까지 나올 수 없어서 중간에 화장실에 가지 않도록 수분 섭취도 자제했어요. 특히 검체가 많이 몰리는 야간엔 정말 바빴죠.”


결핵연구원으로 모이는 검체는 전국의 선별진료소에서 채취한 것으로, 협회가 위탁운영한 선별진료소에서는 지부에 근무하는 임상병리사가 직접 검체를 채취했다. 박준용 과장도 당시 울산지역 선별진료소에서 검체를 채취했다.


“울산역 선별진료소는 협회 최초의 선별진료소였어요. 나흘 동안 151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진주 목욕탕 집단 감염을 검사할 때도 지원을 나갔어요. 이런 경우는 검사결과를 재촉하는 민원을 많이 받게 돼요. 그렇다보니 결핵연구원에 결과를 빨리 내달라는 연락을 자주 했었어요.”


  • 코로나19 방역이라는 하나의 목표에서 지부와 연구원은 역할이 다른 만큼 상호입장 차이가 있었다. 피검자나 의뢰기관에 한시라도 빨리 검사결과를 통보해야 하는 지부의 입장과 하루 5만~10만 건씩 밀려드는 검체를 신속하면서도 정확히 검사해야하는 연구원의 입장은 서로 달랐지만, 결국에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갔다. 코로나19 신속진단 검사사업은 중단됐던 협회 사업에 촉매 작용을 했으며 협회가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리고 2021년 결핵연구원에 미래감염병 신속진단 센터가 설립됐다.

    협회를 포함한 보건의료 기관의 헌신과 국민의 동참으로 이제는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6년째 OECD 회원국 중 결핵 발생률 1위이며, 그동안 감소하던 결핵환자 수가 12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될 위기에 놓였다. 그렇기 때문에 잠복결핵감염 양성자를 찾아내 ‘발병 전 치료’를 조치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김정현 과장은 잠복결핵감염 음성자의 추구조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는 결핵균 검사업무를 하기 때문에 결핵균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서 잠복결핵감염 검사를 받았어요. 결과에서 음성이었는데, 1년 후 흉부 X-선 검진에서 결핵을 진단받았어요. 물론 지금은 완치되었구요. 현재 우리나라는 잠복결핵감염 검사를 대상기관의 종사자가 생애 1회 검사받도록 하고 있는데, 음성자에게도 정기적 추구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결핵 및 코로나19 진단검사사업이 협회 복십자의원 내원자의 검체도 함께 검사하고 있어서 검사사업과 의료 사업은 긴밀히 연관되어있다. 박준규 주임은 최근 개원한 제주특별자치도지부 부설 복십자의원의 검사실 세팅에 참여했다.


“복십자의원 검사실 내 장비 배치와 전체적인 동선을 설계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임상병리사 경력은 갖고 있지만, 병원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없어서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본부장님께 하나하나 배우며 일했고, 완공해서 개원까지 마치고 나니 뿌듯합니다.”


  • 협회 주요 도시에서 운영 중인 9개 복십자의원은 지역 주민에게 결핵을 포함한 호흡기내과, 소아청소년과, 정형외과 등의 진료와 의료서비스(건강진단 및 검사, 예방접종, 각종 검사 등)를 제공하는 동네의원이다. 이러한 복십자의원 시스템을 기반으로 노인, 장애인 및 거동 불편자 등 의료 접근성이 낮은 대상자를 중점으로 찾아가는 건강검진이 수행되고 있다. 또한, 결핵환자 및 잠복결핵감염 양성자를 발견·등록하여 치료와 관리를 통해 우리나라 국가결핵관리 사업에 이바지하고 있다. 현재 대구 복십자의원에서 간호사로 근무 중인 이명희 대리는 협회에 입사하기 전 보건소에서 결핵 업무를 했었다.

“결핵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결핵환자가 많더라구요. 그리고 결핵환자가 자신이 결핵임을 숨기거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복약을 중단하는 사례가 많아서 놀랐어요. 결핵환자가 완치될 수 있게 돕고 싶어서 협회에 입사했어요.”

“복십자의원은 결핵뿐 아니라, 주민에게 독감 등의 예방접종도 해드려요. 저희 병원은 많을 땐 하루에 천여 명씩 내원하시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아주 혼란합니다. 아기들은 주사 맞느라 울고, 부모님들은 우는 아이 달래랴, 혹여 순번을 놓칠까 싶어 조급해하시고. 그래도 그해 독감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지낼거라 생각하면서 조금 더 힘을 내봅니다.”


  • 또한 협회는 국외 결핵퇴치에도 힘쓰고 있다. 1996년부터 오늘날까지 KOICA, KOFIH, WHO 등으로부터 결핵 고위험국의 결핵관리 역량 강화를 위탁받아 국제협력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26년간 쌓아온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경험을 토대로 전 세계 ‘건강한 삶의 보장과 모든 세대의 복지 증진(UN-SDG 3)’에 이바지하고 있다. 협회는 그동안 라오스, 동티모르, 몽골, 우간다, 캄보디아 등에서 국제협력 사업을 진행했다. 서석형 팀장은 2020년 몽골의 협력사업 PM을 맡으면서 국제사업 업무를 시작했고, 현재 글로벌협력원 국제사업팀을 맡고 있다.

    “ODA는 대체로 2~3년의 단기 사업입니다. 하지만 결핵퇴치는 단기에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사업이 지속되려면 다음 입찰에서 선정되어야 해요. 그래서 각 ODA사업은 현실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국제사업을 하다보면 기술지원도 필요합니다. 결핵 고위험국의 검사실 구축과 정확한 검사결과를 낼 수 있도록 정도관리를 하는 업무 등이죠. 이럴 경우에는 결핵연구원의 결핵진단팀과 협업해요.”

결핵연구원은 각국의 실험실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핵심 기술 자원인 전 세계 32개 SRL(초국가참조 검사실, Supernational Reference Laboratory)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에서 결핵 분야의 유일한 WHO 협력기관이다.


“라오스에 특히 오랜 기간 기술지원을 해왔어요. 검사실 구축부터 기술전수 및 정도관리를 지원했죠. 정도관리 사업은 결핵 검사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것으로, 우리가 제조한 평가물질을 사용해 테스트합니다. 평가물질은 결핵 양성 또는 음성일 수 있는데, 모종의 평가물질을 제공하고 대상기관이 도출한 검사결과에 옮고 그름을 확인하는 겁니다. 만약 올바른 결과를 내지 못한 경우는 그 원인을 찾아서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연구원이 기존의 약제감수성 검사법을 개조해서 만든 M-kit가 있는데, 이를 활용한 검사법과 M-kit 제작 기술도 전수하고 있습니다.”


정도관리 사업은 국내에서도 수행 중이다. 현재 질병관리청 및 대한임상검사정도관리협회와 함께 국내 결핵검사의 정도관리를 지원하고 있다.


  • 대한결핵협회는 국가결핵관리사업 외에도 결핵 예방 및 퇴치를 위한 홍보사업과 모금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한 셔우드 홀의 ‘만인의 항결핵 운동’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매년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며 기부금을 모아 결핵퇴치기금으로 사용하고 있고, 결핵퇴치를 지지하는 회원을 모집·관리함으로써 협회가 추진하는 사업의 지지층을 형성해왔다. 문세희 과장은 현재 크리스마스 씰 모금사업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씰을 구매한 사람 중에는 결핵퇴치기금 모금에 공감해서 구매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마 3할 정도 될 겁니다. 나머지 7할은 크리스마스 씰과 굿즈를 보고 ‘갖고싶다’는 마음으로 씰을 구매한 사람들이겠죠. 저는 후자의 마음을 얻고 싶어요. 처음에는 예뻐서, 혹은 갖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더라도 크리스마스 씰이 결국은 나와 타인을 잇고, 이웃과의 사이를 이어주기 때문이죠. 그들에게 당신의 행동이 ‘가치소비’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소재를 선정할 때에는 사회 이슈나 트렌드를 소재로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크리스마스 씰의 따뜻한 이미지를 잃지 않으려고 해요. 고심해서 결정했어도 혹시나 씰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일까봐 노심초사합니다. 그래서 더욱 현재에 집중하고 신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처음 이 업무를 맡았을 때, 크리스마스 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시도하고 싶은 3가지가 있었어요. 첫째는 셀럽 혹은 스타, 둘째는 캐릭터, 마지막은 예술. 펭수(2020년), 유재석(2021년), 손흥민(2022년) 그리고 올해 동화작가 앤서니 브라운과 함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면서 그 3가지를 모두 해본 셈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더라구요. 그래도 올해 조금 더 기대를 해보겠습니다.”


매년 본·지부는 힘을 합쳐 크리스마스 씰 모금을 하고 있다. 김현웅 팀장은 2012년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광주전남지부에서 근무했는데, 지난 3년간 전량 반송한 전적이 있는 학교들을 직접 방문해 씰 모금에 동참해주시길 요청한 적이 있어요. 아쉽게도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거절하셨어요. 그런데 며칠 뒤 광주의 어느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학생과 교직원 모두가 한 세트씩 모금에 참여하시겠다고요.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후로도 꾸준히 씰 모금에 동참해주셨죠. 이러한 순간들이 업무가 힘들게 느껴질때마다 동기부여가 되어줍니다. (웃음)”

  • 투수에게는 반드시 포수가 필요한 법! 마치 포수처럼 검진·검사·의료·국제협력·홍보·모금사업 등의 값진 활약을 뒤에서 묵묵히 받쳐준 사람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행정 업무 담당자이다. 김현웅 팀장과 박용혁 팀장은 예산과 운영지원 업무 등을 담당해왔다.

    “협회 업무 중에는 주무 관청의 허가가 필요한 일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정관 승인이나 모금 승인이죠. 특히 예산이나 결산 내용이 수반되어야 하는 경우는 사업부서와 함께 대응합니다.”

    “우리 협회의 주무 관청은 (2020년 이전까지는 보건복지부였으나) 현재 질병관리청과 국회로, 이들 기관에 국정 감사를 받거나 예산 및 사업성과를 보고하는 일들이 있죠. 그 외에도 유관기관에게 협회를 대표해 우리 기관을 소개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렇다보니 담당자로서 긍지와 부담감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옷차림과 언행에 더욱 신중하게 되더라구요.”

2018년부터 비영리 기관도 발생주의 회계를 적용하도록 공익법인 회계 기준이 정립되면서 협회도 발생주의 회계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엔 국세청 세무조사 및 모금기관 취소 등의 제약을 받을 수 있어서 협회로서는 반드시 도입·적용해야 하는 부분이죠. 본·지부와 결핵연구원, 글로벌협력원까지 15개 기관을 통합한 하나의 재무재표를 만드는 일은 결코 만만찮은 작업이라 5년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이제는 우리 협회가 자체적으로 투명하고 체계적인 발생주의 회계를 이끌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웃음)”

  •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작과 함께 협회의 사업들이 중단 또는 무기한 지연되면서 협회는 이미 승인된 2020년도 예산을 지출할 때마다 건별로 통제했을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신속진단 검사사업를 시작하면서 난관을 극복했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고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는 2015년도에 협회 예산이 주무 관청의 승인받는 체계에서 제출하는 체계로 전환된 점도 큰 작용을 했는데, 예산 편성에 자주성을 갖게 되면서 신사업 발굴과 사업 확장에 필요한 투자가 원활해졌기 때문이다. 협회가 위기를 벗어나면서 직원에 대한 처우와 복지, 근로 환경 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결핵퇴치’라는 사명감만으로 열정과 희생을 기대할 수는 없죠. 개인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우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도 협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업 인프라를 위한 예산 편성은 미래를 위한 재투자이기도 하고요. 직원 한 명 한 명이 협회에서 근무하는 기간은 대한결핵협회 70년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죠. 하지만 그들 덕분에 결핵퇴치사업을 지속해 올 수 있었고 올해 협회가 70돌을 맞이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결핵을 넘어설 새로운 70년의 시작

앞에서 만난 16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대한결핵협회가 70년을 이어오는 데 결핵퇴치사업을 수행한 부서는 물론이고, 사업과 조직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부서까지 수고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모두가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해준 덕분에 ‘결핵과 함께 70년’을 왔고, 협회는 앞으로 이들과 함께 ‘결핵을 넘어설 70년’을 만들어 갈 것이다. 창립 70주년 기념 슬로건처럼 국내외 결핵퇴치와 더불어 결핵 외 호흡기 감염병 분야로 영역을 넓히며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기반을 단단히 뒷받침해 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