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더 나은 미래로 향하기 위한 역사 여행
부산 남구 - 역사 나들이

여행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휴식을 위해, 누군가는 평소 가기
힘들었던 곳을 가기 위해, 누군가는 특별한 계절을 즐기기 위해.
하지만 이런 목적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방문하여
역사를 잊지 않고 교훈을 얻기 위한 ‘다크 투어리즘 (Dark Tourism)’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휴양지로 많이 알려진 부산에는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박물관들이 많다.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의 가슴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기억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의 현장으로 떠나보자.


오수진 사진 송태경

  • 대한민국의 자유와 수호를 위한 ‘유엔평화기념관’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나오면 바로 옆, 또 다른 아픈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유엔평화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유엔평화기념관은 총 두 개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1층에는 한국전쟁 발발부터 정전 협정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2층은 UN의 탄생부터 활동 과정, 한국전쟁에 참전한 22개 전투·의료지원국의 활동상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국전쟁과 UN참전국에 대해 다루고 있는 기념관인 만큼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자료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3년 1개월간 치러졌던 6.25 전쟁 속에서 부산항에 입항한 UN군의 모습과 적뿐만 아니라 추위와도 싸워야 했던 장진호 전투, 크리스마스의 기적인 흥남철수 작전, 유모차수송 작전 등 치열했던 그 날의 흔적들 속에서 UN군의 모습을 둘러보며 오늘날의 평화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나 UN참전기념실에 펼쳐진 여러 전투지원국 및 의료지원국의 유물을 보며 전 세계에서 뻗은 도움의 손길에 감사함을 느끼며 다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 잊혀서는 안 될 역사의 기록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부산 복십자의원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는 유난히 역사를 간직한 곳이 많다. 산책하듯 20여 분을 걷다 보면 어느새 가슴 아픈 역사를 기록한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도착한다. 4개의 층에 걸쳐 전시된 방대한 양의 기록을 보면 당시 참혹한 강제 동원의 실체를 알 수 있다. 탄광이나 건설 현장에는 일정 나이가 되면 모두 끌려와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은 물론 나이에 상관없이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강제 동원됐다. 또한, 여성들은 근로정신대라는 명목하에 차출되어 성 착취까지 당해야 했다. 길었던 강제 노역의 세월을 견디고 어렵사리 돌아왔던 귀환길의 모든 기록은 당시 끝이 보이지 않았던 고통의 시간을 견뎠을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특히 5층에 전시되는 ‘위패관’과 ‘피해자·기증자 기념공간’은 전시된 규모만큼이나 당시 희생자의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기획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6층에는 희생자분들의 넋을 기리고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기획된 캘리그라피 전시회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7층을 통해 옥외로 나가면 추모탑이 세워져 있다. 희생자를 향한 추모의 마음을 담아 짧은 묵례를 했다.

  • 부산의 전 세대를 한눈에 ‘부산박물관’

    유엔평화기념관을 둘러본 후 10분 정도 걷다 보면 부산박물관에 도착할 수 있다. 선사시대부터 뼈아픈 역사를 지난 근현대사, 그리고 현대의 ‘부산’까지 담고 있다. 특히 ‘부산’이라는 지역에 초점을 맞춰 전시한다는 것은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귀중한 박물관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구석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유물들이 소개된 동래관을 볼 수 있다. 부산박물관에 전시된 모든 유물은 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로 이루어져 있어 먼 과거 부산으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동래관 관람 후 2층으로 올라가면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부산관이 나온다. 유물 중심으로 전시가 이루어진 동래관과는 달리 부산관은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소개가 된 공간이다. 일본 사절이 드나들었던 출입문의 역할을 했던 조선시대부터 임진왜란 당시 부산을 지켰던 사람들,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6.25 전쟁 당시 수많은 피란민의 안식처, 민주주의의 불을 밝혔던 근대사까지의 부산의 모습이 소개되어 있어 부산의 역사적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전시관이다. 교과서에서 볼 수 있었던 독립운동가들이 아닌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했다는 것에서 부산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려는 부산박물관의 노력이 보여 가슴이 뭉클했다.

  • 골목 속 골목, 비밀의 정원 ‘문화골목’

    다시 부산 복십자의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려보자 평범한 골목길 사이에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또 다른 골목길이 틈새로 보인다. 건축가 최윤식이 경성대학교 인근 주택을 매입하면서 레스토랑으로 바꾼 후, 인접해 있는 주택 4채를 함께 사들여 복합 문화 공간으로 조성한 ‘문화골목’이다. 2008년에는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을 수상한 후, 지금까지 소극장, 갤러리, 주점, 독립서점 등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곳곳에는 빛바랜 우편함과 쌓여 있는 기와, 녹슨 펌프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져 있고, 폐건축 자재를 재활용해 리모델링을 한 덕분에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크기가 큰 골목은 아니지만 이러한 소품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보게 된다. 그렇게 골목을 둘러보다 보니 유난히 우뚝 서 있는 종탑을 볼 수 있다. 문화골목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종탑에는 넝쿨이 휘감겨 있어 여름에는 더 푸르른 풍경을 만들어 냈고, 날씨가 추워져 넝쿨이 갈색빛으로 물드는 시기에는 빈티지한 분위기를 풍겼다. 갤러리나 독립서점만 운영이 되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낮과는 달리 주점, 소극장이 활성화되는 저녁 시간에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니 해가 진 후의 모습도 궁금해진다.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가 된 ‘광안대교’

어두워진 시간의 문화골목을 느끼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부산 복십자의원 근처로 오니 광안대교가 보인다. 앞서 박물관 관람을 통해 부산의 일대기와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니 새삼 발전된 부산의 모습이 뭉클해진다. 강제 동원됐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던 조선 땅, 평화를 지키기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온 UN군이 처음으로 밟은 땅, 전쟁을 피하기 위해 끝없이 내려온 땅이었던 과거의 부산은 이제는 어느덧 관광 도시로 크게 성장했다. 수영로와 해운대 지역의 교통체증을 개선하기 위해 개통된 광안대로는 국내에서 가장 긴 교량으로 관광명소와 세계적인 무역도시로 변한 부산의 경제 성장의 상징성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조명 시스템을 갖추어 일몰 후 예술적 조형미를 갖추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부산의 발전 속도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지내다 보면 지금의 평화로움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주제로 여러 박물관을 관람하고 보니 모든 평화는 쉽게 얻어진 것이 없다는 것이 더 깊게 와 닿았다. 평화로운 일상은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이 있어야만 유지가 된다. 우리는 조국의 평화를 힘들게 지켜내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또, 과거 어딘지도 모를 땅으로 와 전쟁을 막고 도움을 준 나라와 사람들에 대한 보답을 하기 위해 아직도 불안 속에 지내고 있을 많은 사람을 위해 함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함께 노력하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