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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디지털 문화 브릿저(Bridge+er)

박진호 디지털 문화재 복원가를 만나다

문화는 역사의 흐름을 반영하는 하나의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에는 당대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고, 철학이 관통한다.
이처럼 복잡다단(複雜多端)한 문화는 오늘 날 디지털 기술로 되살아나고, 새롭게 조명된다.
박진호 디지털 문화재 복원가는 이 모든 시대적 구조를 조사하고 기획하며
지난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고자 한다.
생생하게 체험하고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서 말이다.
그의 손을 거친 역사적 인물과 문화재들은 시간을 거슬러
당시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다시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디지털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박진아 사진 변정호, 박진호 디지털 문화재 복원가 제공

문화재 복원가의 씨앗이 싹트다

박진호 복원가는 어릴 적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초·중· 고 기간을 통틀어 독파한 역사책만 해도 1,500여 권에 이른다고 하는데, 책 속의 문장 하나하나가 그의 머릿속에서 생생한 이미지로 펼쳐졌다고 한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내가 상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박진호 복원가는 이런 마음으로 ‘디지털 복원’이라는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문화인류학과에 진학했다. 1991년 대학교 1학년 당시 ‘노아의 방주’를 디지털 작업으로 복원시키고, 다음 해인 1992년에는 경기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 발굴 작업에 참여하면서 ‘디지털 문화재 복원’에 대한 꿈을 향해 차근차근 다가서기 시작했다. 홀로 남겨진 유물들은 그저 돌 조각과 다름없어 보이지만, 디지털 기술을 입혀 당시의 생활 모습으로 재현하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간 듯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 과정과 시간의 행보

디지털 문화재 복원가는 유·무형의 문화재를 디지털 기술을 통해 가상공간에 복원하는 일을 한다. 과거에 훼손됐거나 사라진 문화재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바라보는 것처럼 가상세계에 현실감 있게 재현할 뿐만 아니라, 직접 경험하는 것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문화유산으로 남길 수 있게 전 세계에서 활용하고 있다. 박진호 복원가는 1999년부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70여 개의 문화유산을 디지털로 복원해냈고, 현재도 여러 문화유산을 복원 중이다. 향후에는 더 발전된 과학기술을 통해 문화 영역을 넘어 다양한 유산들을 복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훼손된 문화재를 가상현실에서 최초로 복원한 건 황룡사 9층 목탑이었어요. 황룡사 9층 목탑은 12세기에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 없어지면서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삼국사기에도 기록돼 있고, 연구 논문도 많아서 복원할 수 있었어요.

디지털 문화재 복원가는 유·무형의 문화재를 디지털 기술을 통해 가상공간에 복원하는 일을 한다. 과거에 훼손됐거나 사라진 문화재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바라보는 것처럼 가상세계에 현실감 있게 재현할 뿐만 아니라, 직접 경험하는 것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문화유산으로 남길 수 있게 전 세계에서 활용하고 있다. 박진호 복원가는 1999년부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70여 개의 문화유산을 디지털로 복원해냈고, 현재도 여러 문화유산을 복원 중이다. 향후에는 더 발전된 과학기술을 통해 문화 영역을 넘어 다양한 유산들을 복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훼손된 문화재를 가상현실에서 최초로 복원한 건 황룡사 9층 목탑이었어요. 황룡사 9층 목탑은 12세기에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 없어지면서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삼국사기에도 기록돼 있고, 연구 논문도 많아서 복원할 수 있었어요.

해외 유물의 경우는 2001년 초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파괴한, ‘바미안 석불’을 이듬해인 2002년 최초로 복원했어요. 작업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찾았었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왕오천축국전을 기술한 혜초스님도 1300년 전의 바미안 석불을 바라보셨다고 들었는데. ‘지금 내가 서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바라보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그때의 감흥이 여운으로 남아서인지 2018년에는 혜초스님도 디지털로 복원했답니다.”

보통은 문화유산을 디지털로 복원해내기 위해 고증된 역사적 기록 및 고고학적 발굴물 등을 3D 스캔한 뒤 융합한다. 이때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MR(혼합현실), 홀로그램, 3D입체, 프로젝션 매핑* 등 다양한 기술들을 사용하며, 전시 목적이나 스토리텔링에 따라 필요한 기술을 선택·적용한다.

“디지털 문화재의 복원은 단순한 복원이 아닙니다. 가상공간 안에 유물이 있던 도시나 장소를 디지털로 그려내는 것입니다. 실물의 복원뿐 아니라 시대와 공간까지 재현해 내는 거죠. 예전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많아서 그저 외피적인 부분만을 표현했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된 지금은 기획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방식들이 무궁무진해졌습니다. 가상세계에 재현된 디지털 휴먼의 경우 빅데이터 기반의 AI 프로그램 기술이 더해질 경우 대화까지 가능하답니다.”

박진호 복원가는 지금도 예년에 비하면 문화재의 디지털 복원 수준도 많이 향상됐다고 말하지만, 수년 뒤 더욱 발전된 기술이 등장할 것을 기대하며 다채로운 기획을 구상하고 있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더 생생한 디지털 문화 복원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현재 우리가 남기는 디지털 문화재 역시 훗날에는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100년 200년 후까지 생각하며 문화재를 복원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관통할 ‘철학’을 함께 고려하면서 말이다.

*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 대상물의 표면에 빛으로 이루어진 영상을 투사하여 변화를 줌으로써,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이 다른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기술이다.

K-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세계와 연결하다

박물관에 특별 기획 전시인 ‘황금의 나라, 신라’가 개최됐다. 박진호 복원가가 직접 석굴암 안에 들어가 조사해서 제작한 디지털 석굴암도 관람객들에게 소개됐다.

“뉴욕 시민 중에서 과연 경주에서 석굴암을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저는 그저 대한민국 신라에 ‘석굴암’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그 존재를 인식하게 하면서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요. 그래서 석굴암을 본 뉴욕 시민들을 쫓아다니면서 인터뷰도 많이 했어요. 전시 기간 22만 명이 가까운 뉴욕 시민과 외국인 관람객들이 방문했어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답변은 ‘한국에도 이렇게 대단한 문화유산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였습니다.”

그의 목표는 디지털 문화유산 한류(韓流)를 구축하는 것—디지털 K-뮤지엄을 구축해 세계로 나가는 것이다. 이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대한민국 대표 디지털헤리티지 기업인 (주)펀잇이 태국 방콕국립박물관과 업무협약을 맺은 후 1년간의 XR·Museum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지난 6월 1일 세계 최초로 태국 방콕국립박물관에 태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유타야 유물을 대상으로 실감 콘텐츠를 설치했다. 이는 아세안 최고의 박물관인 방콕국립박물관에 한국 디지털헤리티지의 기술력을 선양할 수 있었다. 박진호 복원가는 이 프로젝트에 초창기부터 참여하였다. 이로써 XR-박물관 신한류(新韓流) 형성에 대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 주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한국의 문화유산 고양과 보존, 활성화를 위해

박진호 복원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외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대한민국 박물관의 디지털 전시’에 대한 특강을 이어나가고 있다. K-문화의 세계화를 위해서이다.

“한국 디지털 문화유산의 세계화 작업이 시급합니다. 하지만,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세계화를 이루기에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전파하기 위한 디지 문화재 복원가분들이 되도록 많이 양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지난 2008년 화재로 불탔던 안타까운 사건이 한편으로는 문화재 복원과 복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키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재가 있기 6년 전, (주)위프코라는 국내 아카이빙 전문 업체에 의해 숭례문을 전체 ‘3D 레이저 스캔’하여 입체 도면을 제작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이 데이터가 지난 2008년 숭례문 화재직후 문화재청에 전달되어 숭례문 실물 복원의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디지털 문화재 복원에 대한 개념이 국 내에 알려지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디지털 문화재 복원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재 복원가는 10명도 채 안 돼요. 꼭 필요한 분야지만, 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이 너무 고되고, 길도 잘 닦여있지 않아요. 우리가 그 길을 다지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서 디지털 문화재 복원의 미래를 밝히고 싶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AI) 콘텐츠는 더 확장될 것이며 ‘메타버스(Metaverse)’의 세계는 나누어진 국가들을 점차 융합시킬 것이다. 그러기에 앞으로는 박물관과 같은 오프라인 공간과 더불어 메타버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디지털 전시’도 진일보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디지털 문화재 복원가의 역할이 더욱 필수적이다. 우리는 그들이 연결한 다리를 건너 역사 속으로 들어갈 뿐 아니라, 미래의 후손들에게 바통을 넘겨야만 한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을 세계 속에 생존시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이자 방법일 것이다.

* XR(eXtended Reality, 확장 현실): XR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아우르는 혼합현실(MR) 기술을 모두 포괄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말한다.